s-402
| 대중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대중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, 그러면서도 대중의 인기에만 영합하지 않는 새로운 출판의 방향이 필요하다. |
s-403
| 맺음말 출판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여타의 다른 여러 제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발전해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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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출판도 팔려나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교환가치를 지니는 상품으로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여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으로 발전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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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자본주의적 상품의 특징은 교환가치를 지녀야만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상품의 이중성에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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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상품은 인간의 지적이고 이데올로기적 활동을 상품의 주 가치로 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다른 여타의 일반상품과는 다른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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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상품은 언론상품의 특성에서도 나타나듯이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상품이지만, 다른 언론상품에 비하여는 가치의 하락속도가 비교적 느린 특성을 지니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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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유통과정을 거쳐 최초에 투입되었던 화폐자본이 상품자본으로 그리고 증대된 화폐자본으로 다시 돌아오는 자본의 운동과정을 거치며출판산업도 출판산업도 자본축적을 마련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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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의 자본축적은 자본의 집중, 독점화를 거치며 더욱 가속화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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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의 이데올레기적 성격은 국가의 통제와 탄압을 수반하였으며 출판의 국가 통제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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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산업이 대기업화되어감에 따라 출판의 활동도 한 나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본의 수출, 상품의 수출을 위한 다국적 활동이 전개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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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의 목적을 보다 나은 삶을 위한 평등과 자유의 확대라고 할 때 출판을 통한 변혁적 성격은 더욱 중요해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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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90년대 들어 출판의 사회변혁적인 성격이 크게 퇴색하고 있지만, 출판을 통한 사회의 변혁, 개혁은 중단될 수 없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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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제는 변혁의 당위성을 기계적이고 교조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닌 대중과 유리되지 않으면서 대중과 호흡하는 책을 통한 사회변혁이 필요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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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의 행위는 인류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자랑스럽고 중요한 행위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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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런 출판행위에 대한 가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이론의 개발은 시급한 실정이나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의 대중매체에 비해 이론적 빈곤과 무관심은 여전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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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필자는 출판을 단순히 서지학적 관점이나 기능적이고 실무적인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제 관계 속에서 보고자 했으나 여전히 이론의 빈곤함을 느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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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다만 출판학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인식의 지평확대에 일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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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베르톨드 슈팡엔베르크는 출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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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출판사의 임무는 저자와 독자와의 관계를 맺어주는 한 중계자라고 할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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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리고 출판사는 환상과 아이디어 그리고 정보를 수집, 전달하는 광장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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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중에서도 특히 서적, 신문 등을 인쇄매체라고 부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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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오늘날 대중매체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상매체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인쇄매체는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통용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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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의 주종을 이루고 있는 것은 서적이라 할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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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서적은 그러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고 있으나, 이는 처음부터 목적지향적 성격을 띠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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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책은 인류의 총제적 지식을 갖가지 관심분야별로 엮어 연령과 교육수준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주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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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일반적으로 오늘날 출판사는 각자가 그들은 전문 분야에 맞는 주제를 엄선, 책이나 잡지 등으로 펴내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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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렇듯 출판사는 다양한 정보와 오락물들을 수용자의 요구에 따라 선별하고, 이를 통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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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우리나라 구석구석에 만연된 '천민자본주의' 의 틀속에 속에 안주, 본분을 망각한 출판사가 많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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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들 출판사가 이제부터라도 장인 정신을 발휘해 각 출판사의 특성을 살리고, 출판사 고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독자층을 겨냥한 고집스러운 출판활동을 벌려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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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매스컴이 발달되면서 '세계최고', '세계최대', '세계제일' 등 더욱 원색적으로 표현되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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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우리들이 그대로 넘길 수 없는 중대한 부분이 아직도 남아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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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것은 바로 '세계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' 이라는 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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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에 대한 홍보는 국민학교 학생들의 교재에까지도 잊지 않고 들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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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이는 문헌에 의해 전해질 뿐 당시의 금속활자는 현존하지 않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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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타민족, 특히 일본인들의 우리나라 역사왜곡에는 단호한 입장을 표명하면서, 스스로의 역사왜곡에는 관용을 베푸는 태도는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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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독재와 군사문화에 의해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어왔고 또 굴절된 시각으로 역사를 보는 관행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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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전 국민 우민화교육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어용학자들과 사이비 언론들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기억하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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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 또한 예외일 수 없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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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불행했던 과거를 되돌아볼 때, 이제부터라도 우리들은 올바른 역사 교육에 눈을 돌려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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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특히 출판사의 경우 과학기술의 발달과 궤도를 같이하고 있어 인류문화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일면도 있지만, 부정적인 역할 또한 이에 못지않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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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산업은 처음부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생산되는 지식산업의 한 분야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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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심오하고 정교한 사회간접자본이 요구되는 출판산업은 18 세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노동의 분업화현상의 일환으로 명실공히 출판산업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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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렇듯 출판은 '고판본' 형태에서 탈피하지 못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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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면 출판 전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고대출판의 흔적을 더듬어보고자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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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출판문화는 사람들이 구술한 것을 기록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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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즉, 이렇게 해서 필기된 것들이 다시금 조판, 인쇄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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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기초 위에서 출판은 처음부터 상업성을 띠게 되었고, 또 이들 서적은 시장을 겨냥해 발간되기 시작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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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인류가 구어체를 기록하는 방법을 배우며, 복사수단과 홍보도 알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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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고대 한 저작품의 홍보는 작가 스스로의 공개적 낭독을 통해 이루어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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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에도 광고전문가가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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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는 한 작품의 원고를 공개적 낭독을 통해 전파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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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이미 B.C. 5 세기 후반부터 이루어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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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B.C. 5 세기경 이미 아테네에는 필사공방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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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때 필경사들은 원고를 필사해 서적상에게 팔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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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68년 그리스가 피드나대첩 후 로마에 합병된 후 로마에서도 서적상들의 활약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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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독립된 필경사들은 원래 그리스의 노예들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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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때 출판은 대량생산의 한 형식을 이루고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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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필사공방에서 원고를 한 사람이 읽으면 그룹의 필생들이 받아 썼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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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서적출판은 수도원과 사원학교로 옮겨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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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전문직으로서의 출판업은 중세 후기 대학들이 생겨날 무렵 자리잡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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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리고 대학들과 협조관계에 놓여 있던 라브라리수타치오나리 그리고 자영서적상들도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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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시민계급의 성장과 함께 도서에 관한 흥미가 강하게 나타나고 또 이러한 현상은 교회와 학교의 차원을 넘어 신흥계급에까지 번져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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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가 고개를 들며 고전에 관한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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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태리에서는 스스로가 고전을 찾아 나서 옛 필사본을 다시금 필사작업까지 맡아 하는 소매 서점상들이 생겨났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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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고대 출판문화 발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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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고대 이집트인들은 내세를 믿었고, 그들의 신앙은 피라미드를 쌓아 올릴 정도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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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리고 그들의 내세를 사자의 서를 통해 기원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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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또한 이러한 신앙심은 주문을 기록하기 위한 문자와 필기자료의 개발을 요구하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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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특히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에서 야생하던 파피루스는 사자의 서에 적합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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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신앙심은 당시 이집트에 파피루스 생산의 산업화를 가져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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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집트의 나일강 델타에서 생산된 야생 파피루스는 그리스, 로마에까지 수출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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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파피루스가 그리스에 들어간 것은 7 세기경이고, 로마엔 3 세기경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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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이미 716년 마르세이유를 거쳐 갈리아에 수입되었고, 로마교황청엔 11 세기 중반까지 사용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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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11 세기경 양피지가 나오기 시작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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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문화중심지로서 도서관, 박물관, 천문대 등 많은 연구소가 설치되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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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여기엔 세계 각처에서 몰려든 학자, 문인 그리고 예술인들이 연구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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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 고대문화가 펼쳐진 전 지역에서 자란 야생초로 우리나라의 왕골과 비슷한 다년생 식물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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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파피루스는 양쪽을 사용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잘 접착되어 필기가 가능한 한 면만을 사용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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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를 다시 각 장을 연결시켜 만들어진 파피루스 두루마리는 오늘날 책의 전신이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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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 외에도 파피루스는 낱장으로 쓰이다가 기원 후부터는 책자로 장정, 보급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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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집트에서는 300년경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발견되었고, 그리스에서는 6 세기부터 쓴 흔적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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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그리스문화와 함께 로마와 이탈리아로 전파되어 로마 황제 시대에 이미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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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파피루스는 2 세기경 양피지가 사용되며 경쟁이 시작되었으나, 출판의 공급이 수요에 딸려 한계성에 부딪치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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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파피루스는 그러나 1050년경까지 교황청에서 사용하는 등 확고한 위치를 굳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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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파피루스와 함께 사용된 양피지는 송아지, 양, 염소의 가죽으로 만드는 질기고 부드러운 필기장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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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기원 수세기 전부터 근동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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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양피지의 기원은 그리스 칼리코스강 유역 페르가몬, 즉 오늘의 베르가마 지역으로 알려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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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중세 종교계를 비롯 많은 필사를 위해 양피지가 사용됐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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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출판업계에도 특별히 호평을 받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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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날로 책의 수요가 증대됨에 따라 이는 다시금 단행본 출판에 가격이 저렴한 종이로 대치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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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양피지는 오늘날까지도 특정한 인쇄물을 위해 계속 생산되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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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면서 두루마리는 코덱스형식의 책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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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미 2 세기경 이집트에서도 파피루스로 코덱스를 사용한 흔적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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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5 세기 서적의 형태가 완전히 두루마리에서 코덱스로 넘어오기까지 양자 겸용의 형식을 취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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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소규모의 형태를 이루고 있던 도시에서 양피지는 공문서 출판에 가장 보편적 수단으로 활용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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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미 3 세기경부터 비용이 덜 들고 질긴 양피지를 사용, 단계적으로 파피루스의 소비가 감소되어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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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특히, 순수문학보다는 정치적 안정, 신학 및 옛 학문의 보전에 적합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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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바로 이러한 상황하에서 유럽사회의 낡은 전통과 억압, 즉 중세의 낡은 질서에 도전하며 과감히 일어난 과도기적 문화운동을 르네상스라고 부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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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개혁운동도 이 시기에 나타난 과학기술의 발달을 빼놓을 수 없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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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러한 격동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또 하나의 새로운 운동이 독일을 중심으로 전개된 종교개혁이다.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