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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리고 종교개혁을 통해 다양하게 나타난 출판활동과 이를 통한 언론자유의 시발은 근세를 여는 데 큰 공헌을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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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세 말 구텐베르크에 의한 인쇄술의 발명은 위대한 문화적 사건의 하나로서 꼽히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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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와 동시에 고판본 발명으로 인해 인쇄계가 새로운 경영형태를 갖추게 되는데, 이는 동력에 의한 기계인쇄시대가 도래할 때까지 잔존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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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인쇄공이 아직까지 독자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 발전단계는 '고판본의 걸음마단계' 라 불리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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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출판계는 활자부터 인쇄소까지 모든 것이 인쇄공 자신의 소유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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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 때까지만 해도 노동분업과 규격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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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고판본은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새로운 위치에 서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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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많은 인쇄업자들이 금공길드 또는 필경사길드 등에 속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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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사업경이 길드 같은 면모를 갖고 있긴 했으나 고판본 자체는 길드와 상관 없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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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따라서 고판본 인쇄공방엔 수공업자나 도시귀족이 똑같이 참여, 도시귀족에게는 재정지원뿐 아니라 적극적인 활동까지도 보장해 주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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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영향력 있는 사업가로서 명망을 떨치게 된 인쇄인은 상류사회의 귀족과 작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 속했는데, 뉘른베르크의 코베르거가 그 한 예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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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리고 지성인들인 학자들 역시 고판본 발행인이나 편집장 또는 직접 인쇄업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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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들은 고판본에서 새로운 활동영역을 찾았고,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저술한 책을 발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기도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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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대학수업을 끝마칠 수 없었던 지성인에게는 이 새로운 기술이 일자리를 제공해주기도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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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리고 성직자들도 개별적으로 참여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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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예를 들면 아우구스부르크의 성울리히와 불라우보이런의 성아프라수도원에서 책이 인쇄되기도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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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경제적인 면에서 고판본은 이미 초기 자본주의의 조짐을 보여주고있다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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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고판본은 소규모 수공업 경영형태로 발전한 경우가 드물며 충분한 판로와 수익성이 보장된 발행부수를 갖는 대규모의 기업형태로까지 성공할 수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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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런 이유에서 초기 고판본시대에 이미 출판업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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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인쇄소 설립엔 구텐베르크의 예가 보여주듯이 많은 자본이 필요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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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화폐경제와 자본은 도시 시민계급의 손 안에 있었고, 인쇄업자들 대부분이 도시 시민계급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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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와 마찬가지로 고판본 판로를 해결하는 상거래의 주역 역시 시민계급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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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렇듯 새로운 기술은 경제적으로 도시와 시민계급에 의존하고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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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많은 고판본 업자들은 자본과 상거래, 그리고 판로부족으로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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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판매 자체는 수요에 의존하고 있었지만, 큰 구매군이 형성되기 전까지 수요가 늘 적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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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도시의 시민들 대부분도 구매력이 없었으므로 생산경비 때문에 점점 비싸지는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속하는 부유한 도시귀족뿐이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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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발행부수가 많을수록 책값은 싸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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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480년 이후가 되어서야 100부에 이르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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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책 수요와 필사본과의 경쟁에서 이기느냐가 발생부수의 증가를 판가름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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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술적으로는 완벽했지만 인쇄물이 필사본을 이길 수 없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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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므로 그것은 마침내 민족항쟁사 곧 독립운동사에 귀결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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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다시 말하면 민족항쟁사는 민족의 형성을 전제 조건으로 할 뿐 아니라 민족의식의 자각을 핵심으로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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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므로 우리의 민족운동사는 이러한 전과정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요, 우리 민족이 형성된 이후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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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엄밀히 말해서 삼국시대까지도 단일민족은 이루어지지 않았고, 따라서 하나의 민족이라는 공동의식이란 것이 없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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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있었다면 그것은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가 별개의 국가의식으로 뭉쳐 있었다는 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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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바꿔 말하면 삼국은 제가끔 고구려민족, 신라민족을 이루려는 별개의 움직임이 잇었을 뿐이라는 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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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다시 말하면 민족이 형성되기 전의, 민족의식이 발생하기 전의 역사를 민족이 형성된 후의 민족의식의 눈으로 본다는 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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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때문에 통일신라는 우리 민족과 문화의 고전시대로 등장하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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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이것도 근대적 의미의 민족의식의 자각은 아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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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오늘의 한국 판도는 고려말의 쌍성 수복과 세종조의 6진과 4군 개척으로 확정된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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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6진과 4군 설치를 계기로 한 인종혼합이랬자 주로 북방계인 여진족이어서 인류학적으로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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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시기에 이르러 비로소 타민족에 대한 공동의식의 자각이 자극된 것이 사실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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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병자의 두 난은 바로 이 문제시하지도 않던 무리들에게 짓밟힘으로써 인식을 새로이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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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정미의 의병은 물론 해외 망명 독립항쟁에 있어서도 초기의 지도층은 거개가 유림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승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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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우리는 앞에서 우리의 대이민족 투쟁의 전근대적 성격을 규명해 보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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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우리는 역사의 시대구분에 있어서 어느 시기로부터 근대라는 선을 긋느냐 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어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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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므로 선조, 광해군, 인조조를 걸친 시대를 근대적 여명의 제 1기로 볼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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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미울 만큼 어리석게 위대한 꿈을 쫓아가고, 그러기에 우리를 하도 우습다가 슬퍼지게 하는 돈키호테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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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꿈을 지니고 싸우며, 싸우다가 패배하고 마침내 죽음 앞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돈키호테의 삶은 연민의 상대이기 전에 바로 우리 모두의 자화상일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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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삶은 타오르는 불, 이상이라는 하늘을 향하여 열정이라는 기름을 태우다 사그라지는 불이 아닌가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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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꿈을 키우고, 꿈을 이루려 몸부림치고, 꿈을 이루지 못해 아파하는 당신 앞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터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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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무릇 꿈을 가진 사람은 꿈을 가졌다는 사실 때문에 돈키호테적 요소를 지니게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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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레닌은 러시아의 돈키호테였나 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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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여보게 산초 판자, 저기를 좀 보게나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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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산더미 같은 거인들이 서른 놈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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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아니 그보다 더 되는 놈들이 우뚝 서 있지 않은가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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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내 저 놈들하고 싸워서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릴 테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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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저기서 얻은 전리품으로 갑부가 된단 말이거든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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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제국주의 전쟁은 사회주의 혁명의 전야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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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전쟁은 제국주의 지배의 쇠사슬이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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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무수한 인민을 부르주아지의 총알받이로 죽이는 이 악독한 전쟁에서 인민을 해방시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악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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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풍차를 부수러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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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저건 다 거인들이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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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무섭거든 이 자리를 비켜나서 내가 놈들하고 무서운 격전을 벌일 동안 기도나 드리고 앉았게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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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천하에 비겁하고 더러운 놈들아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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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결과는 어떻게 되었던가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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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거의 으깨진 돈키호테 그런데도 이런 것쯤 편력기사에게는 늘 따라다니는 재변이거니 여기면서 모든 것을 말의 실수로 돌리고서는 축 늘어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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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다른 일과도 달라서 변전무상이란 병가의 상사가 아닌가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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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무슨 상처를 입었데도 죽을 염려는 조금도 없는 거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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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제 내가 만들어 가지고 자네한테 주면 그때는 이렇게 써야 하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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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소비에트 권력의 주도 아래 전국에 전기로 가동되는 기계제 대공업을 육성하면 사회주의 사회는 도래한다는 것!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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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런데 과연 약속했던 낙원은 건설되었던가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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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산초 내가 가르쳐 줌세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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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편력기사란 달포를 먹지 않는 것이 자랑이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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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먹는다 해도 손에 잡히는 대로 먹는 법이지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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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는 이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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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옛날 편력기사들을 볼 것 같으면 자기들이 얻은 섬이나 왕국을 그 종자들에게 다스리게 하는 것쯤은 너무나 흔한 풍속이었다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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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까짓 것을 자네가 대단하게 여길 것도 아니지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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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러시아 땅에 전기와 기계가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는데도 낙원의 여왕은 왜 오지 않았을까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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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돈키호테의 판단 착오는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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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무릇 편력기사가 되려면 기사 임명식을 거쳐야 하는 법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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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것이야말로 기사도의 본분이요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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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러시아 국민의 모든 계급과 계층의 상태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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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프롤레타리아트는 지배 계급이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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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는 극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개시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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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사회주의 혁명은 한 국가에서 승리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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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혹 돈키호테처럼 대갑식은 치렀으되 정당한 기사 임명식은 치르지 못한 그런 사회주의 혁명은 아니었던가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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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들 볼셰비키당 지도자들은 궁핍과 억압 속에서 지내던 생활에서 하루 아침에 명성이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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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현실에서 이러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도 극히 드물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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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가발을 쓰고 커다란 안경으로 변장하였던 레닌은 그 거추장스로운 짓을 그만둘 수 있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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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새 내각은 낡은 권위를 고집하는 전통적 관습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자 하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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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모스크바의 봉기 과정에서 전투중에 크레믈린 궁이 파괴되었다는 소문이 나돈 적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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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볼셰비키의 야만적 문화 파괴에 항의하고는 즉각 사표를 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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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사람들은 권력을 쟁취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빛나는 역사적인 수도를 불구로 만들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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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런 때 교육 인민 위원직을 맡고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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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소비에트 정부는 발족된 첫날부터 관공리로부터 보이코트를 당했다. |
s-698
| 그들은 새로운 지배지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거부했다. |
s-699
| 한 목격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. |
s-700
| 도시의 궁핍한 사람들이 이 때문에 비참한 궁지에 빠져 들었다. |
s-701
| 굶주린 불구자.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