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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낚시를 할 때 고무보트를 묶어두던 펭귄 군서지 끝의 암초는 얼음에 갇혀 거울처럼 조용한 물에 그림자가 비춰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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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얼음에 갇힌 바다는 물결도 거의 없이 잔잔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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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해안 가까이와 그 밖이 다르기 때문에 갇힌 바다도 심상치 않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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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해안 가까이의 바다가 얼 준비를 하는가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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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펭귄 군서지에는 펭귄이 한마리도 없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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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지난 주만 해도 거의 1천 5백여마리 이상이 관찰되었는데 바다가 얼음으로 막혀 굶을 것 같아서 본능적으로 가버렸나 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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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제 남극은 초겨울에 들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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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해안에서 10, 20미터까지는 얼음덩어리가 얼어붙어 움직일 줄 모르고 바깥은 얼기 시작해 그 면적은 점점 넓어져 가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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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낮도 짧아져 9시 40, 50분에 태양이 나타나 2시 30, 40분에는 사라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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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태양의 고도마저 낮아서 흐린 날에는 점심을 끝내면 이내 어두어지기 시작해 앞으로 거의 4주간은 낮이 짧아질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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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날씨도 추워지고 폭풍설도 심해질 것이며 유빙으로 덮인 바다도 강한 북풍이 불어 유빙을 다 몰아내지 않는 한 저 상태로 얼어붙을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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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가 넘겨 준 쌍안경으로 보니 2백여마리 정도의 펭귄이 한줄로 마라안소만 북쪽 바닷가 얼음위로 오른쪽에서 왼쪽 마리안소만 입구쪽으로 가고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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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앞쪽은 아주 촘촘하고 가운데는 듬성듬성하며 뒤쪽은 비교적 촘촘하게 규모는 작지만 펭귄의 이동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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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거리가 멀어서 펭귄의 종류는 모르겠으나 창고동 앞에서 본 젠투펭귄 한마리가 그 대열에서 합류하려고 뒤뚱거리며 열심히 가는 것을 보아 젠투펭귄으로 생각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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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대원들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앞서가던 펭귄이 얼지 않은 부분으로 들어갔다 나오니까 그 뒤를 따라 오던 펭귄들도 예외없이 물로 들어갔다 나왔단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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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김정우 연구원이 목격한 바로는 펭귄들은 마리안소만의 비교적 동쪽 가운데에서 북서쪽 해안으로 비스듬하게 건너 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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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다음날 다행히 날씨가 좋아 펭귄의 출발지라고 생각되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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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펭귄이 아직도 두 마리가 있었고 주위의 눈이 황갈색으로 더럽혀진 것을 보아 펭귄들이 집결했던 것이 분명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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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게다가 펭귄이 얼음덩어리 위에서 내려와서 걸어간 자국이 살얼음 위로 선명하게 나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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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들이 어디에서 그곳까지 왔나 의문이 생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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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평소 마리안소만 안쪽에서는 펭귄이 없었는데 펭귄 군서지에서 육지를 횡단했나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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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아니면 요 며칠 눈보라 칠 때 마리안소만 안쪽으로 피신했는가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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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며칠동안 남동풍에 눈보라와 북서풍이 번갈아 불 때 기지 남쪽에서 기지 앞을 지나 마리안소만 안쪽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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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따라서 미처 떠나지 못한 펭귄들이 군서지를 떠나서 은신이 되는 마리안소만의 안쪽까지 왔다는 생각이 든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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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펭귄은 역시 바다에서 사는 새니 산을 넘어 오지 않고 해안을 따라 걸어왔을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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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단지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지 못했을 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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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초순 사이 맥스웰만이 유빙으로 덮이고 결빙되면서 눈보라와 심한 바람 때문에 시계가 나쁜 펭귄들의 이동을 볼 수 없었음이 유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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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펭귄들은 마리안소만을 나와 위버반도해안을 따라 콜린스 하버쪽으로 돌아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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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맥스웰만을 그냥 지나가기에는 유빙으로 덮인 바다를 건너야 하므로 어려우리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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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드디어 1 시간 정도 지나서는 뒤쪽의 펭귄들도 콜린스 하버쪽으로 모두 사라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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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88년 7월 초에도 똑같은 현상을 본 적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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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때는 마리안소만이 아니라 맥수웰만 가운데에서 1천 2백여 마리가 약 1킬로미터 이상에 걸쳐서 이동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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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때에도 앞쪽으로 촘촘했는데 뒤쪽으로 갈수록 사이가 벌어졌고 반면에 아주 뒤쪽으로 비교적 촘촘했던 기억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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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맥스웰만을 지난 펭귄떼들은 넬슨섬의 해안쪽으로 사라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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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오너르 콜린스 하버 쪽으로 간 펭귄들이 그렇게 남아있는 무리인가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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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 8월 초순에 위버반도에서 젠투펭귄 40마리를 만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잇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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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88년 당시에는 열 마리 가까운 킬러고래가 펭귄이 올라선 얼음판을 싸고 빙빙 돌았는데 올해엔 킬러고래의 출현은 없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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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오전에는 영하 16 C에 바람이 상당히 세차 몹시 춥더니 오후는 영하 14 C에 밤이 없어 괜찮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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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정도의 기온이면 견디기에 좋다는 기분이 든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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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공기에 노출되는 코끝, 뺨, 턱이 시리고 공기속에 노출된 손은 몇 분만 되어도 시리다못해 아파온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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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론적으로 체감온도 영하 30 C 내지 영하 60 C에서는 공기중에 노출된 피부는 30초 이내에 언다니 곧 얼기는 얼리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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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대원들은 펭귄의 이동을 보면서 탄성을 질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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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, 그것도 겨울에 바다가 얼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보기 드문 광경인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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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단지 펭귄의 숫자가 적은 것이 유감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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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오후에 해가 나자 대원들은 기분이 좋아져 무개개사진을 찍고 또 물개를 배경으로 자신들의 사진을 찍으며 눈위에서 씨름까지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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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에 오길 참 잘 했다!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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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런 광경이나 기쁨은 문명세계에서는 느끼지못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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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단지 바람방향에서 보호된 마리안소만과 포터소만과 콜린스 하버 남쪽에만 유빙이 없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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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맥스웰만의 95퍼센트가 유빙으로 덮여 있다고 생각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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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답게 높이 6, 7미터에 길이가 짧으면 60, 70미터에서 길면 4백, 5백미터 정도의 탁상빙산들도 열 개 정도 들어와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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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마극반도 서쪽 어느 곳의 소규모 빙붕이 깨져 브랜스필드해협을 떠다니다가 남동풍에 밀려 온 것이리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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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맥스웰만 입구에 정면으로 열려 있는 우르과이기지 앞에는 큰 탁상빙산이 밀려와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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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지난 밤에 날린 눈으로 언 부분은 하얗게 빛나나 신선한 얼음면은 푸른 색을 띤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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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반암의 물질이라도 섞여 있으면 검은 색으로 물들기도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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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유빙이 하도 빽빽하게 들어차 멀리에서 보면 빈 틈이 하나도 안 보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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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누군가가 중국기지까지 걸어갈 수 있겠단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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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지금은 안되어도 꽁꽁 얼어 붙으면 갈 수도 있으리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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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중국, 칠레, 소련기지와 우루과이기지 등 모두가 조용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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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엄숙한 겨울에 자숙함일까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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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유빙덩어리가 없는 마리안소만에는 살얼음이 얼어가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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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솜사탕같이 하얀 눈이 덮인 해안에 얼어 붙어있는 3, 3미터의 얼음덩어리 위에는 물개들이 올라와 쉬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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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큰 것은 수컷일테고 새끼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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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물개는 기지부근에서 여름에다 간혹 보이나 대개는 추울 때인 7월경에 나타나는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추워서인지 일찍 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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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물개들은 놀고 급경사인 얼음덩어리 위로는 헤엄치다가 머리를 내밀면 살얼음이 깨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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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젠투펭귄 다섯마리와 쉬스빌 몇 마리와 갈매기가 보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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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회갈색의 자이언트페트렐이 한 마리 날아 다닌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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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길을 잃고 아직도 돌아가지 못했을까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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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아니면 주변 어디에 남아있는 걸까?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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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필데스반도는 5월 중순에 비가 온 이후 다시 눈에 덮여 그 북서쪽의 빙원과 색깔로는 구별을 못할 정도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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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단지 빙원은 윤곽이 미끈한데 반하여 필데스반도쪽을 건너다 보면 검거나 회색인 곳이 더 많으리라고 생각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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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지뒤편은 희게 보이나 위버반도에서 제일 높은 서울봉과 세종봉이 급경사라 눈이 덜 붙어 회색으로 보일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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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태양 질수록 햇빛의 영향은 작아져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북서쪽 능선전체가 진한 붉은 색이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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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높아질수록 엷어지면서 푸르러 드디어는 어두워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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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황혼이 아름다운 것을 보니 내일도 날씨가 좋아지려나 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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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빙원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태양쪽만 서서히 황색으로 비교적 진하게 반사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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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주위의 산 그림자는 회색 내지 어둡게 빙면 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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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올 겨울은 세종기지가 생긴 이래 유난히 폭풍설이 일찍부터 많이 불고 몹시 추웠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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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은 추워야 제격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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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여름도 아름답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는 법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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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바다가 얼고 펭귄이 이동하고 물개가 나타나는 것을 보니 킬러고래가 나타날 때가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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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88년 7월 맥스웰만에 나타난 킬러고래를 숨을 죽이며 본 기억이 새롭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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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깨끗하고 인적이 없으며 추운 곳, 남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며, 특히 바다가 어는 남극의 겨울의 아름다움과 신비함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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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동지는 북반구의 동지인 12월 22, 23일이 아니고 반대로 하지인 6월 21, 22일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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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때가 월력으로는 남극을 포함한 남반구의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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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보다는 이날이 북반구에서 낮시간이 제일 길듯이 남반구에서 밤이 제일 길어 그만큼 생활하기 어려운 날이라고 할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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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3월 21, 22일 남반구의 추분을 지나고부터 밤이 길어지기 시작하여 남극점에서는 24시간 밤이 계속되기 시작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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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시간이 갈수록 밤이 계속되는 지역이 넓어지고 밤 시간이 길어져 동짓날에는 남극권인 남위 66.5 이남에는 밤만 계속되는 날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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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킹조지섬이 필데스반도에 잇는 칠레기지에서는 9시 26분에 해가 떠서 14시 30분에 지니 낮시간은 5시간 4분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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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세종기지는 칠레의 마쉬기지보다 남쪽에 있으니 몇 초 늦게 떠서 몇 초 일찍 질 것이며 낮시간도 몇 초 더 늦으리라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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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동짓날에는 기지간에 월동을 축하하고 성공적인 남극연구를 기원하는 축전을 주고받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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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념과 국적, 피부, 종교, 문화, 언어 등이 달라도 남극연구라는 공통된 목표를 위해 같이 고생하므로 서로가 관심을 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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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이것도 날씨가 좋아야지 수송이 여의치 못할 때에는 필데스반도에 있는 네 나라 기지만이 모여서 동지잔치를 즐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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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세종기지에서는 동짓날 팥죽과 함께 있는 식품을 총동원해서 특식을 해 먹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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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하루하루가 그렇듯이 동짓날도 월동기간의 유일한 날이며 밤이 제일 길다는 점에서는 더욱 특별한 날이기 때문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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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동지를 전후한 6월은 본격적인 남극의 겨울이 시작하는 때로 남극 폭풍설이 기승을 부린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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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윙윙거리는 바람소리와 희뿌연 하늘은 사람들을 침울하게 만든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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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여름에도 땅이 노출되지 않는 빙원이나 빙붕지역은 말할 것도 없겠으며 땅이 노출되는 세종기지 부근도 이맘때면 삭막한 풍경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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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하늘은 진한 회색이고 해안과 기지주변에는 검은 색은 거의 없이 모두가 하얀 얼음이나 시퍼런 빙벽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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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바다는 얼어붙었고 새들도 떠나가서 자취를 감추고 식물은 생장을 멈춘 채 얼음과 눈 속에 파묻혀 황량한 자연을 실감하게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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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적어도 밤이 가장 긴 날이 잘 지나가면 앞으로는 낮이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. |