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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지에 도착한 다음날부터 20명 가까운 기지증축기술자와 제 3차 월동대 10여명과 제 4차 월동대 선발대와 기지보수기술자 등 40여명이 계획대로 물자를 하역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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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상대방은 군인인지라 24시간 체계적으로 작업하여 기지에서도 이에 맞추어 3 교대로 바쁘게 일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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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건설자재를 운반한 이후에는 기름을 운반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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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름 펌프로 고무탱크에서 기지탱크로 옮기기가 바쁘게 다음 고무탱크가 내려오곤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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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처음에는 서툴렀으나 곧 손발이 척척 맞아 큰 어려움이 없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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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장비동과 창고동은 기지에서 6백미터 떨어진 축구장에 짓기로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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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지를 지을 당시 불도저로 평탄하게 깎아 놓은 곳으로 큰 건물 두 채가 들어앉기에는 그 곳밖에 없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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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보다 가까운 좁은 장소는 평탄하나 다음에 지을 기지의 작은 건물과 사람이 자주 드나들 건물을 위해 필요한 곳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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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2월 14일 4차 월동대원 후발대 8명을 조사선편으로 기지에 도착했으며, 17일 3차 월동대가 떠나면서 기지유지는 우리들의 임무가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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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제는 누구한테 물을 수도 없고 우리 자신의 슬기와 노력이 전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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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새벽 2, 3시경에 밝아지고 오후 11시경까지도 밝으니 잠자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커튼으로 가려 어둡게 하는 등 지혜를 모아 잘 극복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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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지증축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전은운씨는 중장비를 운전하며 증축작업에 참여했으며 김반장도 틈틈이 도와 주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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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어총무는 기호품을 관리하고 백영식씨는 요리 솜씨를 발휘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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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김성욱씨는 기지시설보수 기술자들과 함께 굴뚝을 교체하고, 보일러 등 기계시설일체를 손질하고 발전동시설에 따른 송유 및 급수관을 시설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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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상복씨는 간간이 생기는 환자들을 치료하고 돌아와 주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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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나머지 대원들은 기지증축작업을 돕거나 물자를 정리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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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연구소에서 파견된 기지시설보수 기술자들이 건물내부를 개조한 덕분에 분위기가 새롭게 변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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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대장사무실은 통신실 옆으로 옮겨가고 그 자리는 휴게실이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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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거주동의 휴게실이 본관으로 옮기고 체련실은 구발전동 2층으로 옮겨 그자리에 침실을 만들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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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제는 밤늦게 당구를 치거나 비디오테이프를 봐도 잠자는 대원들을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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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드디어 2월 27일 기지증축관계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7명이 떠나면서 제 4차 월동대 15명만 남게 되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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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 후에는 한미공동연구인 고층대기물리연구에 참여하는 김정우 연구원이 간간이 기지에 체류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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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제 4차 월동대 15명은 1992년 1월 초순경 기지를 떠나게 계획되어 있으니 대원에 따라서 14달 가까이 기지에서 생활하게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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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는 그만큼 남극으로 가고 오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계획보다는 기상에 좌우된다는 이야기로 문명세계에서의 계획이나 예정이 그대로 통할 수 없다는 뜻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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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세종기지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 말의 뜻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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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91년 1월 중순, 세종기지에서는 서울의 기지방문단을 기다리고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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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예정일인 12일의 이곳 날씨는 비행기 착륙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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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시계가 나쁘고 최대풍속이 초속 20미터가 넘더니 밤이 되어서야 겨우 수그러 들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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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3일도 거의 비슷한 날씨로 지난 월요일인 7일 소련 수륙양용차를 빌려온 이후 나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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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문명세계의 손님들에게는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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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5일 오전은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가 들어올 것 같지가 않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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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겨우 한두 마디씩 알아 듣는 칠레기지의 무전내용도 15일에는 비행기가 없고 16일에 있을 것이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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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렇다더라도 세종기지에서 기다리느니, 이들은 외국기지의 시설과 연구내용, 기지유지실태 등에 관심이 지대하므로 이것들을 살펴볼 겸 오전에 고무보트로 칠레부두에 도착하여 소련기지를 방문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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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오후 3시 40분경 예정과는 달리 칠레공군의 수송기가 들어와 이들은 귀국길에 올랐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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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91년 1월 중순에는 한미공동연구인 고층대기 연구 관계로 미국인 교수가 세종기지에 체류한 적이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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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관측장비를 점검하고 이상부분을 확인한 후 떠날 준비가 된 것은 며칠 후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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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래서 그가 노리는 것은 예정에 있는 비행기보다 불시에 왔다가 가는 비행기였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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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세종기지에서 무전으로 알 수 없는 비행기, 예를 들면 급한 환자수송이나 칠레 아닌 외국의 비행기가 여름에는 간혹 있을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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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한 비행기 운항은 칠레기지까지도 임박해서야 알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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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설혹 당일 세종기지에서 알았다 해도 때는 늦은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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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세종기지와 칠레기지 사이의 바다를 건넌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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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한 사실을 아는 그는 22일부터 칠레기지로 가려고 신경을 썼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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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곳에서 기다리다가 예정에 없는 비행기를 만나면 다행이고 안 되면 예정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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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물론 세종기지에서는 숙박이 무료이지만 칠레공항호텔에서는 적지 않은 숙식비를 지불해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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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그에게는 문제가 시간이지 체류비용이 아닌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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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드디어 25일 오전에는 날씨가 비교적 좋아져 칠레기지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건너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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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날은 그에게 행운이 따라서 칠레공항에 오자 남아메리카 끝 푼타아레나스로 나가는 급환의 관광객을 옮기는 칠레 경비행기가 공항에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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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기대 않던 일이 그대로 적중했던 것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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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렇게 잘 들어맞는 것은 행운도 작용했겠으나 그의 끈질긴 노력, 즉 10킬로미터라도 더 가까이 가서 기다리겠다는 그의 의지와 노력의 결과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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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킹조지섬에서 들어올 때도 문제가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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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예정대로 출발을 못하는 경우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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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렇더라도 늦어지면 기다리다가 탈 수도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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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통고도 없이 예정보다 빨라지면 닭 쫓는 개가 되어 다음편을 기다려야 하는 때도 생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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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어떤 경우에는 칠레공군기가 킹조지섬에 왔다가 착륙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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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91년 6월에는 공군기가 들어왔으나 시계가 나빠 착륙을 못하고 돌아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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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렇게 자연적인 이유도 있지만 인위적인 이유로 착륙을 못하는 수도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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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1990년 10월 하순에는 그 얼마 전에 착륙하면서 사고가 난 공군기를 미처 치우지 못해 들어온 비행기가 돌아간 적이 있다고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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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물론 며칠 후에 임시로 활주로를 만들어 들어왔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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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 중 한 대는 1990년 10월 푼타아레나스 이륙 후, 프로펠라가 떨어진 채 마쉬기지에 착륙하다가 비행기가 앞으로 쏠려 손상을 입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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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비행기는 1991년 4월경에나 제대로 수리가 된다고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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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두 대 중에는 한 대가 고장이어서 칠레공군자체의 남극물자운송 내지는 그에 부수되는 계획을 전면 재조정해야만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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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칠레공군에서 마쉬기지의 중요성은 높지 않아 남극에 근무하는 칠레공군들도 고충이 많으리라 생각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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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칠레공군기를 이용하는 경우 전적으로 이들의 계획에 따라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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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들도 대자연의 조화에는 꼼작을 못하지만 이들이 운행계획 내지는 긴급성에 절대적인 결정권이 있음은 당연하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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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래도 열심히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대견스럽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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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봄에서 여름인 9, 10월 초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는 비교적 왕래가 잦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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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낮도 길고 기온도 높아 얼음의 위험도 적어지고 생물활동이 왕성해지며 인간의 활동도 많아지기 때문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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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런 이유로 1989년 초에는 DAP라는 칠레민간비행사가 경비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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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민간기가 운행될 때에는 칠레공군기에는 일체의 탑승이나 화물적재를 금해 민간사업을 보호하는 측면을 보이기도 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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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수송능력이 작기 때문에 탑승예약이 되어 있더라도 그 출발 가능성은 항상 유동적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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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공군수송기같이 큰 비행기는 푼타아레나스 이륙 후 바쉬기지의 기상이 급변하는 경우 돌아갈 수도 있으나 작은 비행기는 그렇지 못해 비극이 일어난 적이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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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칠레를 제외한 나라의 비행기에 적은 숫자의 사람이 편승할 경우 운임도 받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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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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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반면 2월 하순 세종기지 건설 기술자 7명이 푼타아레나스로 나갈 때에는 1만불을 요구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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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선박회사측에서는 타당한 이유가 있겠으나 운임이 이렇게 비싸면 이용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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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칠레 민간선박이 운행되기 이전인 1989년 12월에는 푼타아레나스의 해군본부와 접촉해보면 킹조지섬 또는 남쪽으로 가는 해군함정편도 알아볼 수 있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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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당시에는 관광객 아닌 연구원은 1일 90불 정도의 요금으로 편승이 가능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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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푼타아레나스는 남극반도쪽으로 나가는 비행기와 배 등의 모든 교통편의 요지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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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소련, 폴란드와 아르헨티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의 비행기와 관광선을 포함한 선박이 들려가는 곳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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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또한 남극반도방면으로 가려는 사람이 다 모이는 곳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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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따라서 여기에서는 남극행의 모든 정보를 구할 수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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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특히 그곳의 호텔 까보데오르노스는 칠레 국영관광공사호텔이고 남극행 정보의 최고 집산지이자 대기처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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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을 오간다는 것은 문명세계에서처럼 예정대로 할 수 없어 예정보다 빨리 갈 수도 있고 늦게 나올 수도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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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조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출발을 항상 확인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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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얼음으로 덮인 거대한 대륙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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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얼음의 두께는 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최근에는 평균 1, 950미터 위에 210미터가 더 있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두께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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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이 얼음은 눈이 쌓여 다져져서 생긴 얼음으로 희다 못해 푸른 색으로 되어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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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얼음은 고체이긴 하나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게 아니고 서서히 움직인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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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내륙고원지대에서는 1년에 불과 수미터를 움직이나 바닷가로 가까이 오면서 빨라져 1킬로미터 이상이 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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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해안가 얼음은 남극의 여름, 11월경부터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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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마리안소만의 안쪽인 동쪽은 높이 약 30미터의 빙벽으로 되어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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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높이 약 20, 30 미터 또는 그 이상의 빙벽이 작게는 수미터, 크게는 수십미터가 무너져 내린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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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얼음이 바다에 떨어져 생기는 물결은 수백 미터를 진행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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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얼음조각들은 작으면 1 미터가 넘으며 마리안소만으로 흘러 나가 맥스웰만으로 사라진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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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그러나 풍향에 따라서는 맥스웰만의 얼음조각들이 기지 앞 해안에 모이기도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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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얼음은 흘러가면서 아래 지형의 영향을 받고 장력에 의해 갈라지게 되어 소위 크레바스가 생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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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크레바스는 평행하기도 하나 지형에 따라서는 직각인 두 방향으로 생겨 마치 그물을 보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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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의 빙산은 북극의 불규칙한 산모양의 빙산과 달라, 위가 평탄한 소위 탁상형 빙산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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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남극해와 남빙양에서는 북대서양과 마찬가지로 빙산을 조심해야 한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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| 눈에 보이는 빙산은 그래도 덜 위험하나 보이지 않는 빙산이 더욱 위험한 것이다. |